1924년 글라슈테에서 태어난 발터 랑에는 학창 시절부터 줄곧 미래에 무엇을 공부하거나 해야할지 걱정할 일이 없었습니다. 워치메이커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루돌프 랑에의 아들, 에밀의 손자이자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의 증손자인 그는 공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그날의 시계 제작을 확인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낼 때 특히 행복해했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래서 1941년부터 그는 오스트리아 발트피르텔 지역의 카를슈타인에 위치한 유명한 워치메이킹 스쿨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같은 세대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겪은 것처럼 그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치주의, 전쟁과 점령은 그가 계획했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습니다.
매뉴팩쳐의 주요 생산 시설 건물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마지막 날의 폭격으로 파괴됩니다. 1948년 발터 랑에가 중단된 학업을 마치고 가족이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던 시기, 소련은 점령 지역을 몰수합니다. 랑에 운트 죄네 브랜드는 이렇게 사라지게 됩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새로운 시작
1989년 11월,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감동적인 역사적 순간을 맞이합니다. 분리와 분단의 오랜 역사가 마침내 끝이 납니다. 또한 40년이 넘도록 강제적으로 중단되었던 시기 또한 끝나게 됩니다. 발터 랑에는 즉시 글라슈테에서 가족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고 그의 꿈을 이루어 냅니다. 1990년 발터 랑에와 그의 성공적인 시계 매니저 군터 블륨라인은 랑에 운트 죄네 매뉴팩쳐를 새롭게 설립할 계획을 세웁니다. 발터 랑에는 "그 당시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제작하고 판매할 만한 시계가 없었고, 직원이나 시설, 기계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글라슈테에서 세계 최고의 시계를 제작하겠다는 비전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랑에 운트 죄네가 부활했습니다.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는 단순한 작센주 파인 워치메이킹의 창립자에 국한된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개성과 가치는 랑에 운트 죄네의 정신적 본질이며 워치메이킹 분야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입니다.
새롭게 설립된 Lange Uhren GmbH는 1992년 아웃사이즈 데이트로 최초의 특허를 출원합니다. 이는 2년 후 랑에 운트 죄네가 최초로 선보인 4가지 시계 중 3가지 모델에 사용되었습니다. 아웃사이즈 데이트는 랑에 운트 죄네의 여러 타임피스에서 독창적인 특징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뛰어난 기능을 갖춘 타임피스를 제작하는 능력은 매뉴팩쳐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페르디난드 아돌프 랑에에게 영감을 받은 모든 타임피스는 시계의 정밀성을 개선하여 가독성이 뛰어나고 조작하기 쉬운 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에 따라 개발됩니다.
본사에 기반을 둔 채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랑에 운트 죄네
랑에 운트 죄네의 본사는 1873년 처음 설립된 때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 마지막 날 부분적으로 파괴될 때까지 글라슈테의 오랜 역사가 기록된 장소입니다. 수년 동안 이곳은 에르츠 산맥 동부의 작은 마을에 있는 건축학적 상징이기도 합니다. 2001년 12월 7일, 랑에 운트 죄네는 역사적인 건물로 다시 돌아와 그 전통을 이어갑니다.
2007년 LANGE 1 TIME ZONE을 출시한 지 1년 후 랑에 운트 죄네는 드레스덴에 첫 번째 부티크의 문을 엽니다. 본사가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랑에 운트 죄네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랑에 운트 죄네는 이제 전 세계 엄선된 주얼러와 자체 부티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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